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 지난주는 받아드린 다는 것, 혹은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책임지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을 받아 드린 것입니다.“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요 13;1) 끝까지 사랑했다는 말은 끝까지 책임졌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매이는 것입니다. - 저희 집 강아지 이야기를 했는데, 멀미를 심하게 해서 어디를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집을 비워야 할 때는 강아지 호텔에 맡겨야 했습니다.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밥 주고 물주고 해야 해서 하루도 맘 편하게 오래 있을 수도 없습니다.
제일 큰 것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후 허리에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떠놓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발을 씻는 것은 종들 중에서도 가장 서열이 낮은 종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의 스승이요, 구주이시면서도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잠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주님을 제사장들에게 팔 것이고, 수제자라 일컫는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 할 것이고, 다른 제자들은 군병들이 칼날이 두려워 다 도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도 이들의 발을 남김없이 씻어주시며,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받아드리기로 결정한 순간 책임지는 것, 끝까지 사랑하고, 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도망갈 것인가, 싸울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날마다 선택 앞에 섭니다. 하지만 우리는 용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 만약 누군가 나의 손에 대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다면 어떨까요? - 다들 놀라실 것입니다. 손이 하는 일이 이렇게 많은가? 싶을 것이고, 내 손이 얼마든지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는데, 왜 그랬지? 하는 후회와 안타까움도 있을 것입니다.
- 누구나 태어나면 아이의 손은 무언가를 잡은 것처럼 꼭 쥐고 있습니다.그러다가 엄마의 손가락을 붙들고, 걸음마를 배우느라 의자를 붙잡고, 조금 더 크면 엄마아빠의 얼굴을 만지고, 강아지를 토닥이고, 스스로 숟가락과 젓가락질을 합니다. 그런데 크면 클수록 점점 공격적이 됩니다. 밀치고, 빼앗고, 움켜지고, 상처를 주고, 손가락질 하고, 하지만 어떤 손은 상처를 싸매고, 밥을 짓고, 기도하고, 선물을 건네고, 봉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등등 어른이 되면 손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섬김과 헌신을 위해 사용되든지, 아니면 쾌락과 욕망과 자기만을 위한 흉기로 사용하든지.
- 예수님은 당신의 손을 아버지 하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이시고, 아무도 상대하지도 만나주지도 않는 문둥병자에게 손을 얹어 기도로 낫게 하시고, 어린아이를 안아주시며,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간음하다 걸린 여인을 용서하시고, 눈먼 장님의 눈을 만지시며, 뜨게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두 손에 못이 박혀서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다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따지고 보면,우리 주변에는 외롭고, 고독하고, 아무도 상대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어떻게 그들을 돕고, 함께 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8:3에서 마태는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서 그에게 대시고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니, 곧 그의 나병이 나았다.”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주님의 손이 치유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포된 말씀의 능력이 치유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우리의 손이 말씀에 붙잡히면 우리의 연약한 손이 얼마든지 치유와 위로와 격려, 따듯한 손길이 되어 구원의 손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