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한 밤중 양떼를 지키며 밤을 지셀 때 천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향하여 비추었습니다.놀라 떠는 그들을 향해 천사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이 곧 태어날 아기 예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눅 2:15) 지난주 나누었던 동방의 박사들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별을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필코 그 별이 향하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보고자 일 년이 넘는 오랜 여행을 결심하였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아기 예수님께 이르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심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고하 안드레는 본래 침례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침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 끈조차 맬 자격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또 주님은 흥하고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스승의 말을 들은 자들 중에 요한과 안드레는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님을 기필코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세무공무원이었습니다. 길을 걷던 주님은 세무서에 앉아 있는 그을 향하여“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씀을 보면 마태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을 하고, 자신이 동료들까지 불러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였습니다. 마태와 같은 직업인 삭개오는 여리고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인파속에서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삭개오는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어떤 어른이 창피하게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히 12:6하에“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흠정역 성경에는 “그는 자기를 부지런히 찾는 이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시다”
- 예수님을 참으로 만난 사람들은 끈질긴 결단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이 있었습니다.
* 지난 반년 가까이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누었습니다.이제 오늘부터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과의 대화에 관해 나누려고 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 그러면 뭔가 너무 신비스러운 일처럼 생각합니다.그래서 뭔가 신앙적으로 탁월하거나 깊은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만이 누리는 신령한 세계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도 하나님께 뭔가를 말씀드린 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만날 일이 없겠지만 행여 만난다 할 때 그것은 대통령의 말을 듣거나 대통령에게 말을 하려고 만나는 것이지 대통령 얼굴 쳐다보려고 만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요14장에서 예수님은 멀지 않은 장래에 제자들을 떠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께서 반드시 다시 제자들 곁으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가룟유다가 아닌 다른 제자 유다가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들 곁에 다시 오신다는 말씀인 것은 알겠는데, 하늘로 떠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믿는 사람들 곁에 오신 다는 것인지 말씀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버지와 내가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는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임재하시겠다는 약속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는 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성령님도, 하나님도 예수님도 영이십니다. 대화 없이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은 무슨 신비로운 일이나 기적이나 신령한 사건이 아니라 성도들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여호와가 항상 인도하겠다.” - 이는 단순한 기도응답을 말씀하심이 아닌 대화를 말씀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