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그는 쓸모 없는 가지처럼 버림을 받아서 말라 버린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서 태워 버린다.
* 본문은 최후의 만찬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주신 말씀인데,짧은 시간에 많은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이제 제자들만이 남아서 힘들고 고달 푼 사역의 길을 가야 할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러셨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14장에서 16장까지 이어지는 말씀의 대부분은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와 관계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선 1절에서는 하나님은 농부이시고, 예수님은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고, 5절에서는 우리를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가지인 우리는 나무이신 예수님이 아니면 농부이신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지인 우리는 절대적으로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5절에서는 그래야 열매를 맺는다. 하셨고, 6절에서는 그렇지 않고 가지에서 떨어져 나가면 말라비틀어져 땔감밖에는 쓸데가 없는, 결국 재 밖에는 남길 것이 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사실 땔감조차 되지 못합니다.엄밀히 말하면, 불쏘시개가 맞습니다. 하지만 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는 예수님을 통해 농부이신 하나님을 얻습니다. - 터키 이스탄불에 가면,‘토프카피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모세의 지팡이라는 유물도 있고, 다윗의 칼, 침례 요한의 뼈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진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세의 지팡이는 아니지만 모세 시대의 목동들이 이런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겠구나? 유추는 가능합니다. 박물관의 지팡이를 본 순간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왜냐하면 1M도 채 안 될 만큼 짧은데다 웬만한 사람의 엄지손가락 굵기의 사이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씀은 이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잘것없지만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와 함께하시니, 그 지팡이가 가리키는 홍해가 열리고, 두드리는 반석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잘것없는 지팡이 같은 나에게 하나님께서 농부가 되어 주신다면, 나의 인생도 기대할 것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과 사랑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관해서는 잘 나누지 않습니다. 시121:4에“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할만한 말씀이 있습니다. 시 139:18입니다.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인데, 성실하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이 내 인생의 농부가 되시는데,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인생의 농부로 모셔드리는 것이며,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곡 붙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