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마귀에게 속아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죄책감이 든 것은 당연한 것, 그런데 이후에 이들의 행동을 보면‘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고(8절)’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숨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자 ‘두려워하여 숨었다.’(10절)고 했습니다.
죄책감이 먼저 왔고, 이후 염려와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죄책감의 행태를 가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창 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가 제사 이전에 이미 가인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며 살았음을 봅니다. 그리고 당연히 죄책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의 죄를 숨기고(아벨을 땅에 묻음), 핑계, 방향을 틀고(자신의 죄를 아벨 때문이라고), 부인하고(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양심이 마비된다.(창 4:13동생을 죽이고도 하나님의 벌이 너무 엄하다고 항의 한다)
그리고 염려와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4)
* 죄책감은 영혼을 시들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바울은 지독한 율법주의자로서 수많은 성도들을 투옥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주님을 만나 용서받고, 구원받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초기에는 아마도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바울을 아주 오랜 시간 사역을 배제시키시고, 고향에서 은둔의 삶을 살게 하신 이유 중에 하나가 바울의 마음에 죄책감을 씻는 시간을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죄책감은 결코 바른 지도자가 될 수 없고, 전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요? 복음은 은혜를 증거하고 전하는 사역이지 죄책감을 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
“바른 믿음은 죄의 심각성과 은혜의 무한함을 동시에 아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죄는 줄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결코 줄어들지 않습니다. - 공중곡예사 성공비결: 상대에게 맡기는 것.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
* 사람의 관자놀이 양옆에는 ‘편도체’라는 것이 있습니다.아몬드 모양의 신경다발로서 우리 몸의 경보시스템입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즉시 우리 몸이 반응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뇌의 기관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차가 빠르게 내게로 다가온다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재빨리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게 됩니다. 편도체 덕입니다. 뿐만 아니라 심장박동이 빨라져서 혈액순환을 돕고, 폐에 산소를 더 많이 공급해서 호흡을 돕고 아드레날린을 분비하여 큰 힘을 발휘하도록 일합니다. 몸이 민첩하게 반응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편도체가 지나치게 예민하면 우리 몸을 망치게 합니다.예를 들면 아파트 경보시스템이 망가지거나 지나치게 예민해서 시도 때도 경보를 울리거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피하겠지만 자주 그러면 정말 불이 나도 또 잘못 울렸겠지 하며 위험을 무시하게 됩니다. 편도체가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은 피부에 작은 점 하나도 예민하게 반응해서 피부암이면 어떻하지? 밤새 걱정하고, 내 아이가 조금만 불평하고 말을 안 들으면 이 애가 커서 뭐가 될라고 그러지! 하면서 마치 아이가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고, 이런 예민함은 고장 난 경보시스템과 같습니다. 늘 지나치게 긴장감속에 살아야 하는 고통의 삶을 살게 합니다.
* 본문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형들의 미움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짐승처럼 이집트로 끌려가서 노예 경매에 붙여지고, 보디발의 집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열심으로 산 덕분에 보디발의 신임을 얻고 잘되나 싶었는데, 다시 감옥에 갇히고 2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 그렇게 감옥에서 생을 마치나 싶었는데,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섭리로 십여 년 만에 형제들을 만나고, 아버지를 만나지만 아버지 야곱이 하나님께로 갑니다. 이후 형들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당연히 요셉이 보복하리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입니다. 이때 요셉은 “당신들이 분명 나를 해치려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형들이 의도한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했습니다. 마치 마귀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하나님께 대해 승리했노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악한 영의 악한 생각과 행동을 선으로 바꾸셔서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젊은 날 끊임없이 고통과 고난속에 살아야 했지만 하나님께 대한 소망으로 극복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런 반전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으셔야 합니다. 대로 내 몸의 경보체계가 고장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것 때문에 또 고민하고 예민해지고, 그래서 더 큰 병을 만들기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믿음을 키우심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