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50:19-21 믿는 자를 향하신 섭리– 지난주는 사람의 관자놀이 양옆에 있는 ‘편도체’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몬드 모양의 신경다발로서 우리 몸의 경보시스템입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즉시 우리 몸이 반응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뇌의 기관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차가 빠르게 내게로 다가온다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재빨리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게 됩니다. 편도체 덕입니다. 뿐만 아니라 심장박동이 빨라져서 혈액순환을 돕고, 폐에 산소를 더 많이 공급해서 호흡을 돕고 아드레날린을 분비하여 큰 힘을 발휘하도록 일합니다. 몸이 민첩하게 반응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편도체가 지나치게 예민하면 우리 몸을 망치게 합니다.예를 들면 아파트 경보시스템이 망가지거나 지나치게 예민해서 시도 때도 경보를 울리거나 처음에는 사람들이 피하겠지만 자주 그러면 정말 불이 나도 또 잘못 울렸겠지 하며 위험을 무시하게 됩니다. 편도체가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은 피부에 작은 점 하나도 예민하게 반응해서 피부암이면 어떻하지? 밤새 걱정하고, 내 아이가 조금만 불평하고 말을 안 들으면 이 애가 커서 뭐가 될라고 그러지! 하면서 마치 아이가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고, 이런 예민함은 고장 난 경보시스템과 같습니다. 늘 지나치게 긴장감속에 살아야 하는 고통의 삶을 살게 합니다.
* 본문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형들의 미움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짐승처럼 이집트로 끌려가서 노예 경매에 붙여지고, 보디발의 집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열심으로 산 덕분에 보디발의 신임을 얻고 잘되나 싶었는데, 다시 감옥에 갇히고 2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 그렇게 감옥에서 생을 마치나 싶었는데,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섭리로 십여 년 만에 형제들을 만나고, 아버지를 만나지만 아버지 야곱이 하나님께로 갑니다. 이후 형들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당연히 요셉이 보복하리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입니다. 이때 요셉은 “당신들이 분명 나를 해치려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형들이 의도한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요셉은 젊은 날 끊임없이 고통과 고난속에 살아야 했지만 하나님께 대한 소망으로 극복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런 반전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으셔야 합니다. 누구나 내 몸의 경보체계가 고장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것 때문에 또 고민하고 예민해지고, 그래서 더 큰 병을 만들기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믿음을 키우심이 좋습니다.
* 기약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그로인해 수많은 제약과 어려움 속에서 재정적인 압박, 교제의 단절, 가족, 혹은 가까운 친인척마저 만나기가 쉽지 않고, 사람들은 극히 예민해지고, 폭발하기 직전인 것 같습니다. 즉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습니다. 성도인 우리에게도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는 디모데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기록한 옥중서신으로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로마감옥에서 약 2년 쯤 되었을 때 기록되었습니다. 노쇠하고, 병약한 바울이 이미 가이사랴에서 2년간 투옥되어 있었는데 다시 시작된 차디찬 지하 감옥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고, 우리가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 알고 있는 것처럼 2주간의 유라굴로 광풍으로부터 구원받아 겨우 도착한 로마에서 황제 가이사 앞에 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이며, 로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언제이며, 기약 없는 시간들이 바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 올수 있었겠지만 바울은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고 염려하며 기도할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했습니다. 관용이란? 내적인 평온입니다. 차분하고 공평하며, 너그럽게 사람들을 대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흥분해 있고, 힘들어 할 때 너희는 그들에게 관용을 보여주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이 관용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바울은 5절에서“주께서 가까우시니라.”했습니다. 바울은 유라굴로의 광풍앞에서, 로마감옥의 차디찬 감옥에서도 항상 주님께서 가까이에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분명 늘 가까이서 말씀하셨고, 약속하셨습니다.
- 아브라함이 점점 나이는 먹고, 약속하신 아이는 생기지 않고, 불안해 할 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하갈이 어린 아들과 함께 쫓겨날 때,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창 21:17) 이삭이 살던 곳으로부터 쫓겨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을 때,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창 26:24)
- 우리가 가진 염려와 고통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서 우리 힘으로 안 됩니다. 항상 내 곁에 가까이에 계신 주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