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 당시에는 히브리어가 아니라 아람어를 썼습니다. 아람어가 유대인의 공용어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예수님은 아버지를 부를 때 아람어로 “압바(Abba)”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의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말 “아빠”와 매우 유사합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을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한국어 주기도문에도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라고 돼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나. 그 호칭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 부를 수 있고 우리는 예수님에게 입양된 양자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을까요?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친근하기 때문입니다. 친근한 게 뭔가. 가까운 것입니다. 예수와 하나님은 왜 가까웠을까. 서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내면과 신의 내면이 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을 때 불어넣었다는 ‘신의 속성’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가까울 수밖에 없고 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로 이렇게 부르게 됩니다. “아빠!”
실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첫째로 안식일을 어겼고, 둘째로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신을 하나님과 대등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5장 18절)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 자신의 기도문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아람어로 “압바”라 부른 ‘주님의 기도’를 그대로 일러주었습니다. 만약 ‘압바’라는 호칭이 예수에게만 허락된 것이라면 제자들에게는 달리 가르쳤을 터입니다. 예수님의 눈에 하나님은 자신에게도 ‘압바’이고 제자들에게도 ‘압바’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에게 ‘압바’입니다. 인간을 지을 때 하나님이 ‘신의 속성’을 불어 넣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DNA’가 우리 안에도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압바’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압바)의 이름이 드러나고, 아버지(압바)의 나라가 오고, 아버지(압바)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그러기 위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골방이 어디인가. 자신의 내면입니다. 왜 자신의 내면인가. 주님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늘이 어디일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땅은 어디일까. 나의 나라, 즉 나의 내면입니다. 땅이 하늘이 되는 일.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통하는 사이가 되고, 마침내 내 마음의 나라에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계속됩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마태복음 6장 11절) - 우리는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그런데 그 세끼의 출처를 ‘하나님’이라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면 일상 속의 소소한 일들을 통해서도 아버지의 뜻을 읽게 됩니다. 그 뜻에 나를 맡기면 내 마음은 더 가난해지고, 가난해진 만큼 하늘이 땅으로 더 내려오는 법입니다.
이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마태복음 6장 12~13절) - 예수님은 하늘이 땅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첫 단추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는 일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의 용서’가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용서의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용서란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앙금을 털어내는 일, 즉 일종의 포맷이다. 앙금을 다 털어낼 때 우리는 텅 빈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 이후“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복음 6장 14~15절)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