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위 광야학교를 졸업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주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도 30년간 평범한 사람의 아들로서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모세도 나이 40이 되어 40년간 광야로 나가야 했습니다. 40년간 이집트의 궁궐에서 왕자로서 호화롭고 권세 있는 삶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도망자가 되고, 양치기가 되었습니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바울도 약 15년 가까운 광야생활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아라비아사막에서 3년, 고향 다소에서 10여년을 보냈습니다.
나무에 물이 오르면 가지에 몽우리가 돋고, 꽃이 피듯이 광야를 통해 내면에 영적 물이 차오르면 비로서 삶이 풍성해 지기 시작합니다. 주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부흥회나 사경회 같은 특별한 집회를 통해서, 혹은 강력하고도 은혜로운 설교를 통해 소낙비 같은 은혜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잠시 시원하고 해갈되는 역사가 있지만 한 번의 해갈로서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누고 섬기는 삶으로 연결되지 못합니다. 내 안에 마르지 않는 샘이 있어야 나도 해갈되고 누군가와 나누는 삶도 가능합니다.
광야학교는 내속에 마르지 않는 샘을 파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속성으로 광야학교를 졸업하고자 하면 안 됩니다. 또 쉽게 졸업하고자 해서도 안 됩니다. 타협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충분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충분히 준비되지 않고 무대에 오르면 다시 혹독한 광야로 들어가야 하게 때문입니다.
* 광야는 :
1. 의존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 그늘, 양식, 친구, 안전, 그 어느 것 하나 의존할 것들이 존재하거나 보장되지 않습니다.
2. 광야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계획할 수 있는 것들이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뭐 한 가지라도 있어야 계획도 세울 수 있는데, 연줄이 될 만한 하나의 끈조차 없습니다.
3. 광야는 이정표도 없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쌓아놓은 것들이 있다하여도 광야의 모래 바람이 한 번 스치고 지나고 가면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4. 진짜 나를 발견하는 곳입니다. 광야에서는 허세를 부려봤자 입니다.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줄 친구가 없습니다. 광야는 홀로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나를 보게 됩니다. 진짜 내 현실과 만나는 곳입니다.
* 광야에서는 :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대화의 대상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의지할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광야학교에서 오아시스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밀담입니다. 그러면 광야에 샘이 터지고, 꽃이 피어납니다. 그토록 애절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매몰이나 은둔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그렇다고 광야가 좋아 스스로 들어간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고독하고 힘든 곳이기 때문입니다. 홀로 있는 것을 지옥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숨 막히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밀어 넣으시면 도망가지 말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