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참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창조하시거나 목사, 장로, 집사를 창조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인간이 되는 것과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이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참 사람의 모습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2:8에“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래서 흙의 특성을 알면 사람으로 회복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참사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흙의 특징은 생명이고 사람으로 회복된다는 말은 생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 그러면 생명을 회복하려면?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생명을 영원하지 않습니다.그래서반드시 죽습니다. 흙으로 돌아간다. 이 사실을 깨닫고,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때 비로소 인간의 생명이 회복됩니다.
둘째 흙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의 회복이란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 흙은 세상의 온갖 더럽고 추한 오물과 쓰레기를 다 받아 드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분해해서 식물에게 필요한 영양소로 바꾸어 제공해 줍니다. 이 땅의 모든 갈등의 원인은 흙처럼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 주님은 “피차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하셨습니다. 회복이 사랑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흙의 특징은 봉사성입니다. - 신학자 지오반니 빠삐니가 “예수의 생애”라는 책에서 “예수님은 왜 더러운 말구유에서 탄생하셨을까? 그것은 주님이 선택하실 수 있는 가장 깨끗한 곳이었기 때문”인간이 깨끗한 척 하지만 인간이 사는 곳이 가장 더러운곳 이라는 뜻입니다. 왜요? 섬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넷째, 흙의 특징은 정직성입니다. -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데 콩 난다는 속담은 흙의 정직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흙은 그 주인이 누구이든 심은 대로 거두고, 심은 것만큼 거두지 권력자라고 해서 아부하지 않습니다.
거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처럼 겸손의 반대는 교만이 아니라 착각이라 했는데 많은 성도들이 거절을 겸손이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으시겠다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거절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러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노라고 하셨습니다. 겸손은? 수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늘 잊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흙은 그 자체로 결코 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모양은 사람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비로소 “생령” 즉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만 흙으로 지은 것은 아닙니다. 짐승도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확연히 다른 것은 사람에게만 생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참사람이란? 하나님의 생명, 즉 영성을 가져야 참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