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산헤드린의 의원인 니고데모가 한 밤중 주님을 찾아 왔습니다.(요 3장) 그러자 주님은 느닷없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하셨습니다.
- 거듭난다는 말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이해할 리 없는 니고데모는 다 큰 어른인 내가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단 말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5절)
구원받는 다는 말은 죽었다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요, 구원받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게 하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구원의 역사를 성령침례라 부르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도록 역사하시는 일을 성령충만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제목인 무엇으로 믿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성령충만으로 믿는다.”입니다.
* 한국교회가 성령충만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말을 하는데, 왜 가장 문제 많은 한국교회가 되었을까요? 성령충만에 대해 바르지 못한 이해 때문입니다. 간절한 기도, 뜨거운 박수, 방언, 등 뭔가 뜨겁고 간절한 어떤 모습을 성령충만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이런 것은 성령충만 때문에 일어나는 일부의 현상)
첫째, 성령의 충만은 욕망으로 부터의 자유함을 주심:요 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인간의 배는 예로부터 욕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뇌물을 먹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잘못된 돈을 취한 사람에게 토해내라! 고 합니다. 그런데 그 욕망의 배에서 생수가 터져 나왔다는 말은 욕망으로부터 자유했다는 뜻입니다.
헨리이야기라는 영화: 미국의 상류층은 한국의 상류층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화려하고 호사스럽습니다. 헨리는 미국의 최상류층의 변호사였습니다. 어느 날 담배를 사러 가게에 갔다가 강도를 만나 총에 맞아 생가를 헤매다가 겨우 살아났으나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림. 조금씩 기억을 되돌리면서 그는 과거의 변호사 생활을 포기합니다. 왜? 최상류층의 삶이란 온갖 죄와 사기, 거짓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갉아 먹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1 오늘 본문 8절에서 성령과 바람을 비교 : 바람이 보이지 않으나 현상이 있는 것처럼, 성령의 사람에겐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함입니다.
둘째. 성령충만은 말씀충만을 통해 받습니다. :요 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성령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 말씀이 가득해야 합니다. 가끔 믿고 싶은 데 안 믿어진다는 분이 있습니다. 믿음은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내 속에 말씀이 없으면, 성령께서 내가 믿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실 수 없습니다. 성경도 안 읽고, 하다못해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조차 안 하는데 어떻게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믿음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악한 영을 논리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뿐입니다. 주님도 광야에서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말씀만이 명료하고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명료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