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무엇으로 믿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성령 충만으로 믿는다.” 이었습니다. 계속 이어서 나누겠습니다.
첫째, 성령의 충만은 욕망으로 부터의 자유함입니다.:요 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인간의 배는 예로부터 욕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뇌물을 먹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잘못된 돈을 취한 사람에게 토해내라! 고 합니다. 그런데 그 욕망의 배에서 생수가 터져 나왔다는 말은 욕망으로부터 자유했다는 뜻입니다.
본문 행 2:8에서 성령과 바람을 비교 : 바람이 보이지 않으나 현상이 있는 것처럼, 성령의 사람에겐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함입니다.
둘째.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입니다.:요 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믿음은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내 속에 말씀이 없으면, 성령께서 내가 믿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실 수 없습니다. 악한 영과의 싸움도 인간의 논리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뿐입니다. 주님도 광야에서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세째,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 요 15:26절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 - 무슨 뜻인가? 하면 삶 그 자체로 예수님이 증거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노인이 되거나 어른이 됩니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노인이 바로 그렇습니다. 자기중심, 이기적인 삶을 살면, 노인입니다. 반면 어른은 병들어 드러누워 있을지언정 얼굴만 뵈어도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중심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그 삶에 하나님의 빛이 있습니다. 말씀의 빛이 있습니다. 그 삶에는 예수님의 향기가 배어 있습니다.
넷째, 성령의 책망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요 16:7-8“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아름다운 인품에 가까워집니다. 사탄을 허락하심도,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창조하심도 끊임없이 변화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연약함과 한계를 넘어 주님에 이르기까지 완성해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끊임 없이 성령님의 조명을 받고,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다섯째, 진리 가운데 거하는 사람입니다.:요 16:13에서“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성령님도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함부로, 마음대로 말하지 않는다.) 오직 듣는 것을 말한다.’하셨습니다. 즉 성령 충만은 무엇이든 말하기 전에 먼저 진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몇천만 원, 몇억의 돈이나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자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깝고 마음이 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습니다. 하지만 말은 죽을 때까지 상처가 되고, 그 말 때문에 죽기도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도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렇기에 성령의 사람은 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똑같은 설교지만 듣는 이마다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내 삶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들어야 하고, 정말 하나님 앞에 선다는 무게를 가지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