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믿음으로 살며, 어떻게 신앙으로 살 것인가?믿음과 신앙의 삶의 결론은“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첫째 사랑은 대상을 가리거나 따지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아르니온(갖 태어난 양) 프로바티온(청, 소년기의 양), 그리고 프로바톤(성숙한 양)에 이르기까지
둘째는 먼저 찾아 가는 것입니다. - 주님은 부활하신 후 먼저 제자들을 찾아가셨고, 이후 갈릴리까지 찾아 가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먼저 찾아와 구원의 선물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렇듯 사랑은 먼저 찾아 가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은 먼저 말을 거는 것입니다. - 사랑은 큰 것이 아닙니다. 먼저 말을 건네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사람의 악함 대신 아름다움을 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나와 좋지 못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찾아가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것이 가능함은 그의 아름다움을 보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넷째 사랑은 필요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장에서 바울이 “사랑은 온유하다.”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사용한 온유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필요를 채워준다는 의미입니다. 독일버스가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해 수천만 원의 돈을 들여 보도부록으로 기울여지는 차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생명은 모두 귀하다는 생각이 만든 배려.
다섯째 사랑은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 요 13장의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 12명의 발을 씻기 위해 겉옷을 벗으셨던 주님은 다시 옷을 입으시고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 앞이지만 의관을 정제하신 것입니다. 고전13:5에서 바울은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성도들끼리도 공식석상에서는 서로 존대해 주고 서로의 공식적인 직책을 불러주십시오. 사랑은 하나님께는 물론 사람에게도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사랑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마도 의도적이었을 것입니다.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배신했던 베드로가 이대로 사역지로 간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세 번 사랑하느냐고 물으심으로 베드로를 이미 용서하셨음을 나타내셨고, 그 대신 평생 나를 사랑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사랑의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아르니온에서 프로바티온, 프로바톤에 이르기까지)입니다.
- 고전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오래 참는 것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희생하는 것이었습니다.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오래 기다리고 참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희생 뒤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듯, 기회를 위해 참고 희생하면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기다린다는 뜻.
일곱 번째 사랑은 그 사람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우리의 말에 사랑은 한 단어뿐이지만 신약성경의 기록 언어인 그리스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다양합니다. 가족 간의 사랑은 스톨게, 연인간의 사랑은 에로스, 친구간, 혹은 스승과 제자간의 사랑은 필리아, 조건없는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라고 표기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사랑은 아가페였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아가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필리아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세 번째 질문을 할 때는 필리아냐고 물으셨습니다. 아가페를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아가페의 사람으로 끌어올리시기 위해, 베드로의 수준으로 먼저 내려오신 것입니다. 사랑은 안 되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마지막 여덟 번째, 사랑은 본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다”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주님으로부터 다시 사명을 회복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다시 말하면 너는 내가 했던 대로 따라서 하면 돼! 그런 뜻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참 어렵다고 생각합니다.여전히 자신의 의지로 믿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대로 살려 하면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은 진리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여러분도 진리의 본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처럼 본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