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은 요 15:5에서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주님과 성도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 농부는 하나님이시고, 나무는 주님이시고, 가지는 성도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성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포도 열매는 나무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가지에서 열립니다. 하지만 포도나무에서 어디까지가 나무이고, 어디까지가 가지인지 구별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가지는 필요할 땐 붙이고, 필요 없을 땐 떼고, 그럴 수 없습니다. 1년 24시간 나무와 가지는 붙어 있습니다. 왜요? 분리는 곧 가지의 죽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고전 6:19) 바울은 우리의 몸이 성령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생각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할 때만 임재하시고, 예배가 끝나면 다른 예배실로, 혹은 하늘로 떠나가시나요? 아닙니다. 1년 24시간 우리 가운데 임재 해 계시지만 예배를 통해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목자와 양의 관계로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시 100:3) - 이스라엘 민족이라면 이 말씀이 무엇인지 다 압니다. 목자는 거의 24시간 양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양들이 잠드는 심야에도 목자는 거적 대기 하나 뒤집어쓰고, 막대기와 지팡이를 곁에 두고 자는 듯 안자는 듯 긴장한 채로 양을 지킵니다. 왜요? 날짐승들이 미리 경고하고 양을 덮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양을 떠나는 순간 양은 무슨 일을 만나게 됩니다. 시편 139편 1-6 - 하나님은 우리가 1년 24시간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 속에 있다는 사실과 보호하심 속에 나를 향해 언제나 시선이 머물고 있음을 우리가 알고 무시로 기도하고, 무시로 하나님께 아뢰며 살기를 원하시고, 이런 관계 속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늘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 것인가?
* 본문 시 5:3에 “주님, 새벽에 드리는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새벽에 내가 주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 - 시편 기자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하나님께 무언가를 아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후에야 하루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24시간 늘 내 삶에 임재 해 계십니다. 단 1초도 나의 질문을 놓치고 싶지 않으시고, 단 1초라도 우리가 듣지 못할까봐 입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 어떤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수녀님은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하십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나는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듣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테레사는 “그분도 들으시던데요!” 이것이 참된 교제입니다. 서로 듣기 원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늘 주목하며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 나누었던 말씀을 다시 들려 드리겠습니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 포도나무와 가지는 24시간 언제나 붙어 있습니다. 가지는 떨어지는 순간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늘 임재 해 계심은 우리를 간섭하시거나 무거운 짐을 지우시기 위함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를 돕기 원하시기 위함입니다.
- 일주일간 사막을 달리는 마라톤이 있습니다.7일간 250km를 달립니다. 낮에는 40, 50도의 불볕더위 속에서, 밤에는 영하에 가까운 추위를 견디어야 합니다. 필요한 음식과 옷은 본인이 배낭에 짊어지고 뛰어야 하고, 곳곳에 물과 음료, 잠간 씩 쉴 텐트는 주최 측에서 준비해 줍니다. 그런데 가끔 사망자가 나옵니다. 수분부족입니다. 충분한 물과 음료를 제공해 주는데도 먹지 않아서입니다. 사실은 목마름과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물과 음료를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주기적으로 교제함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를 무시하고 삽니다. 그러다가 영혼이 시들고 병이 듭니다. 때로는 다시 회복하지 못한 채 죽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것은 나의 생명을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