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믿음으로 살며, 어떻게 신앙으로 살 것인가?믿음과 신앙의 삶의 결론은“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사랑이 대상을 가리거나 따지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둘째는 먼저 찾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그 뒤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신 사건 이후를 뜻하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배신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쫓을 것이며, 배신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위급한 상황을 만나자 너나 할 것 없이 주님을 떠나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알지 못하노라고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활하신 후 그런 그들을 두 번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다시 옛 삶의 터전인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또다시 저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것도 갈릴리 현장으로,
죄인인 우리를 먼저 찾아와 구원의 선물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며칠씩 시간을 갖고 보아야 할 만큼 방대한 양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 최고의 가치를 지닌 물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이 그림은 가로 53cm 세로 77cm의 작은 그림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열 번이나 사람을 해부했을 만큼 심혈을 기울인 아 작품을 다빈치도 67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자기 옆에 걸어 두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나리자가 많은 그림 중에도 으뜸인 까닭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눈처럼 그림 속 여인의 눈이 주는 시선 때문입니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곳에서 그림을 보든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눈과 마주치는 것처럼 시선이 마주치게 됩니다. 사랑이란 이런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시선은 나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그렇게 가까이 계셨고, 주님을 3년이나 곁에서 뵈었음에도, 저들을 향해 먼저 시선을 두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사랑은 가장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랑은 먼저 말을 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가까이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먼저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요 21:4-5)
- 사람들은 누군가 먼저 말을 건네주기를 기다립니다.부부가 싸우고서 화해하고 싶은데 차마 말을 먼저 건네지 못하고 상대가 먼저 말을 건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피차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존심 싸움이 됩니다. 그러는 동안 오해는 쌓이고, 깊어져 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치료 불능이 되어 이혼에 이르게 됩니다. 누군가 먼저 말만 걸었어도 화해했을 것인데 먼저 말하기 싫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큰 것이 아닙니다. 먼저 말을 건네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두려움에 숨어 있는 아담 부부를 먼저 찾아와 주시고, 먼저 말을 건네심으로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배신한 제자들을 먼저 찾아와 주시고 먼저 말을 건넴으로 인해 회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한 것이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또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에게도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에게도 악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그 사람의 악함 대신 아름다움을 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도 사람이 없으면 완성된 경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감탄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나와 아무리 좋지 못한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에게도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사랑은 그것을 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