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에서 바울은 인간의 상태에 대해“9.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 10. 간음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사람을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그 밖에도,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훈에 배치되는 일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 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대하여는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딜레마라고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인간의 모습과 하나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반면에 인간의 상태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10.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4.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15.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16.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함이 있다. 17.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18.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롬 3:10-18)
‘j. I 패커’라는 분이“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대립되고, 하나님은 거룩하심 때문에 인간과 대립된다.” 그랬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인간은 아무리 소원을 해도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죄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도 인간에게 오시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때문입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려고 동쪽으로 가시는데,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려고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인간을 향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동쪽으로 향하시던 하나님은 다시 인간을 향해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의 성육신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래서‘R. C 스프라울’이라는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가장 어려운 질문은 이 세상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가 아니라 왜 하나님은 이악한 우리를 참으시는가?”하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세상이 이러느냐’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수백 번 수천 번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또 하나님과 반대방향으로 돌아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 상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없습니다. 가까이 하실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우리를 향하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하나님의 이 무한한 자비에 대해 무관심하고, 반응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믿음의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이런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렀음을 잊고 삽니다. 이제 우리는 한없이 참는 은혜 앞에 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