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 염려에 관한 말씀을 나눔(빌4:4-7) 염려란?약한 두려움, 그래서 염려와 두려움은 쌍둥이는 아니나 사촌 간처럼 비숫한 유형의 불안과 초초함입니다. 그런데 공항장애와 염려는 동기입니다. 공항장애는 절대 죽는 병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곧 죽을 것 같은 공포와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병입니다. 또 염려는 “만약 ∼ 하면”이라는 가정법을 가진 의심과 걱정입니다.
“화를 내지 말고 분노를 그쳐라. 안달하며 걱정하지 말아라. 이것은 악으로 치우칠 뿐이다.”(현대인의 성경. 시 37:8) 염려는 숨을 거칠게 만들고, 잠을 빼앗고, 에너지도, 안녕도 빼앗아 간다. 그래서 건강을 해치는 악이라고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염려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염려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죄책감마저 들게 합니다. 평안하지 삶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빌 4:6) 바울은 아무런 여지도 없이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진의는“그러므로 염려하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즉 염려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이며, 염려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염려가 순간순간 올 때가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염려를 방치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염려를 방치하면 그때는 정말 죄가 됩니다. 마음도 둔해지고, 믿음도 둔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4, 6절에서
1.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4절) - 어떻게? 가능, 나는 내 삶을 통제할 수 없지만 주님은 가능하시지
2.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즉 염려를 염려하지 말고, 즉 염려에 갇히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3. “기도와 간구로”왜? 주님께서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면서 꼴을 얻을 것이다.”(요 10:9)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어떤 걱정이나 근심이나 염려꺼리들이 행여 사실일지라도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문이라고 하셨기에 주님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것도 그 문으로 들어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들에 대해 바울은 말하기를
4.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했습니다.
* 오늘은 염려와 근심의 원인인 죄책감에 관해
-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마귀에게 속아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죄책감이 든 것은 당연한 것, 그런데 이후에 이들의 행동을 보면‘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고(8절)’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숨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자 ‘두려워하여 숨었다.’(10절)고 했습니다.
죄책감이 먼저 왔고, 이후 염려와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죄책감의 행태를 가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창 4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가 제사 이전에 이미 가인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며 살았음을 봅니다. 그리고 당연히 죄책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자신의 죄를 숨기고(아벨을 땅에 묻음), 핑계, 방향을 틀고(자신의 죄를 아벨 때문이라고), 부인하고(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양심이 마비된다.(창 4:13동생을 죽이고도 하나님의 벌이 너무 엄하다고 항의 한다)
그리고 염려와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4)
* 죄책감은 영혼을 시들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바울은 지독한 율법주의자로서 수많은 성도들을 투옥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주님을 만나 용서받고, 구원받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초기에는 아마도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바울을 아주 오랜 시간 사역을 배제시키시고, 고향에서 은둔의 삶을 살게 하신 이유 중에 하나가 바울의 마음에 죄책감을 씻는 시간을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은 죄책감은 결코 바른 지도자가 될 수 없고, 전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요? 복음은 은혜를 증거하고 전하는 사역이지 죄책감을 전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
“바른 믿음은 죄의 심각성과 은혜의 무한함을 동시에 아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죄는 줄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결코 줄어들지 않습니다. - 공중곡예사 성공비결: 상대에게 맡기는 것.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