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 이해하시고 알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은 당신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태어날 아기의 이름이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계시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창조하셨을까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으셔서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성전은 인간과 함께 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성전을 우상단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 몸을 당신의 성전으로 삼아 우리 안에 거하시겠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믿음의 가족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지구는 현재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테러, 전쟁, 기근, 기아, 그리고 2년 째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펜데믹, 여기에다 가정의 불화, 부부간의 갈등, 사업의 어려움, 재정적인 곤고함, 교제의 어려움, 원인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병원체들,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마누엘 하나님, 구주이신 예수님은 단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다 아시고 이해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정말 성탄은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있어 행복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평화와 은혜를 기대할 수 있어 좋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 주시는 사건입니다. 본문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인간처럼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궁금해 합니다.그래서 각각의 상상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무서운 형상을 가진 짐승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기상천외한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분명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인간처럼 오신 것이 아니고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얼굴은 분명 인간의 모습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하나님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려 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가 인간처럼 죽는 것을 상상할 수 없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조를 상상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이 연약하고 한계 속에 살아 인간의 모습과 같다는 사실이 싫은 것입니다. 무언가 우리를 압도하고 정말 이분은 하나님이 맞아 할 정도로 어떤 대단한 모습이어야 상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사도는 분명하게 “말씀이 육신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 즉 로고스 이신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1926년 조지할리라는 선교사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라는 곳의 마노부족을 위해 의료선교회를 조직, 할리선교사는 매년 1만 명이 넘는 원주민을 치료, 하지만 5년 동안 단 한명의 원주민도 교회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풍토병에 걸렸습니다. 아버지가 의사이지만 아이는 결국 고열에 시달리다가 죽었습니다. 이억 만리 외지에서 홀로 관을 만들고, 아이를 묻으려고 가다가 원주민 할아버지가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아이의 죽음을 안 할아버지는 운구를 도와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관을 무덤에 안치하고 흙으로 덮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이 폭발했습니다. 그러자 원주민 할아버지는 온 동네에 “백인이 울었다.”하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 다음 주일 예배당에는 마을 추장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믿는 예수를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얼굴을 가지셨고, 우리처럼 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보이고 싶으셔서 우리와 같은 얼굴을 취하셨습니다. 우리의 상한 얼굴 속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