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사람의 욕심이 스스로를 죽이기까지 하는 것은, 어떠한 일도 제 손으로 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 중국 역사를 보면, 약 560명의 황제가 있었는데,황제로서 정치를 하는 일 말고, 대부분 두 가지 일에 몰두했는데, 식탐과 색탐이었습니다. 황제의 한 끼 식사에 동원되는 식자재의 양이 일반서민의 반년 치 양식에 해당하였다고 하고, 조리사만 수백 명에 진귀한 먹거리를 찾기 위한 부서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또 대부분 황제는 아주 작게는 100명, 많게는 수천 명의 후궁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몇몇 황제를 제외하고는 비참하게 죽거나 일찍 죽었습니다. 다윗도 10여 년의 도피 생활, 그리고 또다시 10년 가까운 세월, 남쪽 유다 중심의 반쪽 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남북을 아우르는 왕이 되고, 나라가 태평성대를 이루자 더 이상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특별히 내치라 할 것 없이 전쟁이 중심이었던 시절, 다윗은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기껏 궁궐 옥상을 거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봤고, 간음하고, 살인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 아침이면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출근하기에 바쁩니다.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역시 목욕하고, 밥 먹고, tv나 보다가 잠자기에 바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변명합니다. “내 영혼을 돌보고, 사는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너무 바쁘고, 힘이 들어 못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핑계입니다. 은혜 속에 살 때는 자신의 한계치를 넘어 살았습니다. 은혜를 갈망했기에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안될까요? 첫째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 없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약 814만분의 1이랍니다. 벼락을 열세 번 맞을 확률이랍니다. 그런데도 삽니다. 이것이 허황하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성실하게 사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한 삶이 싫습니다. 힘이 듭니다. 전도하고, 선교하고, 기도하는 것이 싫은 것에는 영적 게으름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은혜의 한 방을 노리며 살고 싶어 합니다. 한순간에 성령의 불을 받으면 인생의 문제가 한 방에 끝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든, 영적이든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꿈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대가를 지급할 마음도 없습니다.
- 게으름에도 단계가 있습니다.첫 단계는 의무에(사명)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두 번째 단계는 아예 의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기 사랑의 확장인데,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옛날에 왕을 죽이는 방법은 자객을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음식에 극소량의 독을 타서 서서히 죽게 하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게으름의 마지막 단계는 정욕, 즉 쾌락입니다. 여기에 빠지면 아예 그 삶에서 하나님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피 흘리기까지 게으름과 싸워야 합니다.경건한 삶에 싫증을 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싫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삶을 미루거나 상황이 좋아지면 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