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뜬금없이 처제로부터 전화가 와서는 “형부, 행복하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물론이지, 예수 믿고 나서 한 번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어!”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 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나는 행복한가? 물론 가끔 위기가 없었던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나는 행복한 가장이었고, 목회자이었습니다.
저의 주변에는 저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행복하게 할까?’를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깨닫고 발견한 것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살아갈수록 내가 먼저 행복해야 내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행복할 것이고, 내 곁에 있는 소중한 분들도 행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맘속에 감사함이 흐르고 있습니다. 더 많이 가진 것도 아니고 좋은 여건이나 환경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분들입니다. 또한 이분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그 음성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흐르고 있습니다. 행복은 좋은 여건에서 나오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결정을 하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경험이 있고, 더불어 주시는 보너스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칼럼을 보니 채권자의 의식을 가지면 불행하고, 빚 진자의 마음으로 살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포도원일꾼의 비유(마 25장)에 보면 품꾼들은 하루 일과가 끝난 후 각각 한데나리온의 품값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와 한 시간만 일한 일꾼도 똑같이 한데나리온의 품값을 받은 것을 안 다른 일꾼들 사이에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약속한 품값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함보다 채권자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큰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채권의식을 가졌습니다. 반면에 탕자는 죽을 때가지 아버지에 대해 빚진 자 의식으로 살았습니다. 누가 더 행복했겠습니까? 다음 주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의 유래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땅에서 첫 보리수확을 한 후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40년간 값없이 매일 새벽마다 내려주신 만나도 감사하지만 스스로의 땀과 정성으로 거두게 된 첫 열매의 은혜를 결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힘써 감사하세요. 그러면 더 큰 감사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