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당연함
감사는 신앙의 현장에서 붙잡아야 할 중요한 단어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과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닫힌 VIP들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간에 있었던 감사한 일을 한 가지씩 나누겠습니다.”하고 목장모임에서 나눔의 시간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재난시대를 맞이하여 감사의 고백이 쉽지 않습니다. 감사하고 싶은데 성도들이 직장을 잃기도 하고, 대면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되거나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재 확산 소식과 정부의 방역 방침의 변화로 인해 스트레스가 더 심해져서 그런지 한 주간의 목회현장을 되돌아보면 감사의 흔적이 좀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감사라는 단어는 모두 알고 있지만 감사를 삶에 적용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불평일까요? 원망일까요? 아니면 무관심일까요? 기도의 자리에서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감사를 상실해 버린 이유는 ‘당연함’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꾸어야 일상에서 감사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의 삶은 일상의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꾼 삶이었습니다.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대할 때 황홀함을 느낄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된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 다락방에 들어가서 매일 반복하던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를 3번씩 드렸는데(단 6:10) 이 기도의 핵심은 ‘감사기도’였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발생하지만, 감사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감사는 우리를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여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초대교회 교부인 ‘크리소스톰’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못하는 죄”라고 말했고, 마르틴 루터는 “마귀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할 뿐, 마귀의 세계에는 절대 감사가 없다” 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감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사단이 원하는 불평을 선택했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불평은 나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영적 게으름에 빠진 내 모습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큰 황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진정한 감사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시 69:30-31)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감사가 우리 인격에 체질화되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꾸어 목장모임 때마다 감사를 더 많이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대양주 가사원장 강승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