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그리고 그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예수 믿고 내 삶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이 변하시거나 내 믿음이 성장했다고 해서 더 사랑하시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 모습, 내 믿음, 내 인격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변화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무엇이든 다 입에 넣는 습관이 있습니다.그래서 위험합니다. 구슬 같은 것을 입에 넣었다가 삼키기도 하고, 심지어 모래를 넣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입에 모래를 잔뜩 넣었는데, 그냥 놔둡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수돗가로 데려가서 모래를 뱉도록 하고, 물로 가글을 시키고, 양치를 시킵니다. 어떤 아이는 물을 싫어하고 목욕도 싫어합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둡니까? 아닙니다. 아이가 싫어해도 건강을 위해 목욕을 시킵니다.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품이 안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성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 몸이 어딘가 장애가 생기고, 아프고, 부러지고, 그러면 안고치고 그냥 둡니까? 천성이지 그러면서 그 불편함 그대로 가지고 삽니까? 아닙니다. 약을 먹고, 수술을 하고, 운동을 하고, 어떻게 하든 고치려 합니다. 그래서 정상으로 회복시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나 성품은 왜 못 고친다고 생각할까요? 많은 성도들이 이게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 당연한 듯 살아갑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서는“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했고,24절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하셨습니다. 구원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일 뿐 아니라 본래의 모습,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그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습, 예수님의 모습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성품을 다 변해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 3:18에서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 옛 모습에서 주님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며, 나를 변하시키는 것이 주님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눅 19:10에서 주님은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버렸고, 예수님은 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으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 제가 어렸을 때 처음 전기불이 들어 올 때의 그 신기함과 촛불과 비교할 수 없는 밝기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어느 집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검침원이 계량기를 보니 몇 백 원 어치 밖에 안 되는 전기를 썼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전기를 안 쓰느냐고 물어보니 촛불을 킬 때 잠간 키고는 끈다는 것입니다. 한 달에 초를 사는데 얼마나 드느냐고 물으니 적어도 5, 6천원이 들어간답니다. 같은 돈으로 훨씬 더 밝게 편리하게 전기를 쓸 수 있는데도 옛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럴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모든 준비가 되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게 하실 수 있는데도 옛 습관과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순종을 거절하고 마치 지금의 이 모습이 당연하고, 운명이고, 천성인 것처럼 속삭이는 악한 영의 속임에 넘어가 사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구원의 경륜에 포함된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