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으면, 나 주가 환상으로 그에게 알리고, 그에게 꿈으로 말해 줄 것이다.
7.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8.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 명백하게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 주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날마다, 그리고 매 순간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그래서 시 139:23-24에서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나를 철저히 시험해 보시고, 내가 걱정하는 바를 알아주십시오. 내가 나쁜 길을 가지나 않는지 나를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과 생각 속에 거짓과 속임수, 추하고 더러운 것들이 차 있다면 하나님께서 내 생각과 마음을 쓰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바울이 몸에 가시로 인해 세 번 하나님께 제해 주실 것을 간구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의 기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바울에게 침묵하셨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왜 바울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없는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후 12: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리고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7절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이미 주신 은혜가 차고 넘쳐서 교만해 질까, 그래서 가시를 주셨는데, 왜 가시를 빼달라고 하느냐? 너에게 가시가 있다고 해서 네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리라고 생각지 말아라. 너의 약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과 바울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다면, 바울도 하나님께 오해가 생겼을 것이고, 계속되는 가시의 찔림으로 인해 좌절하고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우리의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 말라기 선자자는 주전 400년 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 더 이상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400년의 긴 시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대인들, 특히 사두개파에 속한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이신론 혹은 성경이신론이란?학설이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18세기에 다시 이런 자유주의 신학이판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신론이란?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더 이상 만물과 인간에게서 손을 떼시고, 자기 뜻대로 살도록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돌아가도록 완벽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라는 전제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신론이란?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신 이후에는 손을 떼시고, 인간이 각각 알아서 해석하고 이용하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회사로 말하면 물건을 만들어 놓고, A/S는 없다는 것입니다.
- 이는 말도 안 되는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인간이 가족공동체를 이루며, 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 넣으셨고, 사랑을 넣으셨고, 이 생명과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우리를 먼저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해 주셨는지 압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아예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아버지와 자녀로서 믿음과 가족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교회는 가정을 중심으로 모여서 예배하고, 교회가 세워지고,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가 가족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기에 가정교회는 당시의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어 가정에서 모인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가족과 가정의 위기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가족 간의 교제가 사라졌습니다. 가정은 숙박업소나 다를 바가 없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마치 사회봉사단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년원이나 고아원에 자원봉사 하듯,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입니다. 둘째는 가족을 뜻하는 밥 문화가 사라졌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외식, 인스턴트식품으로 한 끼를 떼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재혼문제로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미리암이 너만 선지자이냐, 하나님이 너하고만 말씀을 나누었느냐고 비난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 미리암을 회막으로 부르셔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주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참다운 교제란?하나님과 대면하여 명백하게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않는 것, 즉 분명한 의사소통이라는 것입니다. 꿈이나 환상이나 특별한 계시를 영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적으로 미성숙한 태도입니다. 가족이 편안하게, 일상이 대화를 나누듯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와 만나고 대화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꿈과 환상, 방언으로 교제하고 대화하는 가족이 정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