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과 계약
저는 미국 문화 속에 살아가는 한국 이민 교회를 목회하면서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문화적인 성향과, 가치를 결정짓는 사고의 방향을 발견하고,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재조명하고 그 단어들이 가지는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내용을 실제적인 측정이 가능한 단어로 바꾸는 방법으로 생각을 바꾸는 노력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직분을 부르기보다 형제자매라는 가족적인 호칭을 사용했고, 모든 교회 모임을 기도회로 바꾸고,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 다수결보다 따뜻한 마음이 표현되는 박수로 대신했습니다. 교회 회중이 담임목회자를 결정하는 청빙이나 신임투표 같은 방법은 교회를 갈라놓고 하나님 보다 사람의 생각을 모으는 방법임을 누누이 설명하고 부족한 목회자나 이웃의 삶을 격려하고 세워가는 영성을 기르는 방향으로의 연습이 중요함을 설득해 왔습니다.
제가 경험한 목회 가운데 "Yes는 Yes가 아니고 No도 No가 아니라"는 애매모호한 경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거절해 놓고 좀 더 강하게 삼세번 부탁하지 않았다고 섭섭해 합니다. 식사하겠냐고 물었을 때 식사하자고 하면 될 것을, 안 먹겠다고 해 놓고 자기 빼 놓고 먹었다고 섭섭해 합니다. 이런 문화적 갈등이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로 나타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말하는 연습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서로 신뢰하고 격려하고 축복해서 그 사랑의 에너지로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 공동체가 애매모호한 태도와 명분만 내세우는 문화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서로 불신하는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Yes는 Yes 하고 No는 No 하는 투명한 목회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를 통해 결국 자기 자존심 세우는 도구로 교회를 이용하려는 습관들은 사라지고, 정직한 영성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왜 서로를 불신하는 영성이 교회에 존재하는가? 마귀의 시험과 유혹, 그리고 인간의 죄 성 때문이겠지만 시중 언어로 말하면 교회생활에 대한 잘못 된 선입견, 그리고 정직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누리는 신앙생활의 연습이 뭔지 몰랐던 오류가 문제였습니다.
공동체에 형제자매로 묶어 주신 교회안의 관계는 계약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가족이라는 뜻의 "언약"입니다. 계약을 "종이에 쓴 약속"이라면 언약은 "말로 맺은 약속"입니다. 계약은 불신을 전제로 하니까 눈에 보이는 종이에 쓰지만 언약은 인격에 근거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말로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신실하신 성품에 근거한 언약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었으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해서 연약한 형제자매를 붙잡아 주고, 회복하는 섬김을 계속 연습하는 것을 약속하자고 격려했습니다. 이런 귀중한 "언약"을 "계약"으로 생각하니까, 잘 지내다가도 조금만 자기 맘에 안 맞으면 불신하고, 헤어지고, 원수 삼는 어리석음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혼을 섬기기 위해서는 서로 진실을 나눌 수 있는 성품과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런 것은 설교 많이 듣는다고 만들어지기보다 갈등의 관계가 생길 때 마다 결단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계는 계약이 아니라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정교회가 너무 좋습니다. 우리가 천국 가서 보고할 때 예수님의 언약을 잘 지키다가 왔다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가정교회 미주가사원장 김인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