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 분간하기
불행 속에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의 저자 시바타 쇼는 말했습니다. “불행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 사람은 거기서 자기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는 거지. 정말 몸에 맞는 불행을 선택하면 그건 너무 잘 맞아서 쉬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몸에 잘 맞는 불행’이라는 말이 생소하면서도 이해가 됩니다. 가정폭력에 괴로워하면서도 점점 익숙해져 버린 가운데 탈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불행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그 불행 속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 편안함 속에서 이들은 어느 순간 불행과 행복을 분간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돼지 쥐엄 열매를 먹으면서 비참한 삶을 느낍니다. 이는 위대한 축복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비참함에 길든 인간이 스스로 최선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가장 비참한 일입니다. 더러운 곳에 주저앉아 있으면서 더러운 줄 모르는 것은 진실로 비참한 것입니다. ‘나는 불행한 자리에서 스스로 행복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지하게 돌아볼 일입니다.
지난 시간 우상이 무엇인지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셨는데, 하나님이 아닌 것에 행복을 느끼거나 하나님 아닌 것에서 행복이나 기쁨을 찾으려 하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성공이나 출세, 부를 통해 행복을 찾는 것이, 예입니다. 자식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식에게서 행복을 찾으려 하면, 자식이 우상이 됩니다. 그러면 부모 자식, 모두에게 불행이 시작됩니다. 좋은 대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쓰실까? 기대하고, 섬김을 위한 도구가 되면, 너무 좋은 일이지만 대학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인생의 목표가 되면, 인생이 어느 순간 황폐해집니다. 우리는 행복의 진정한 의미와 근원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행복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실 행복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