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과 겸손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한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자기 주변에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면서 구원의 확신이 있기에 교회를 굳이 안 다녀도 나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 된다고 믿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구원받은 것이 맞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분의 표현에 의하면 성경에 교회 다니라는 구절도 없으니 교회에 구애받을 필요 없이 나 혼자 하나님을 잘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선 이런 생각은 성경에 대한 무지가 까닭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에 관한 이야기라고 봐도 좋을 만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메시지는 개인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말씀입니다. 말투도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 가 아니고 "너희가" 이고 "너 혼자"가 아니고 "너희가 함께"입니다. 물론 "너희가 함께"라는 말에 믿는 자들 모두를 지칭하는 전체 교회라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분명히 당시 모이고 있던 실제적이고 작은 공동체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분이 구원받은 분인가? 저는 구원의 문제가 언제나 그렇듯 단언할 수는 없지만, 구원을 못 받았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얘기한 이유는 그 말에는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의 교만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연수가 깊어 갈수록 우리에게 생기는 것은, 구원에 대한 겸손인 것 같습니다. 구원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드러나는 나의 부족이 눈에 보이고, 나의 그런 부족한 모습이 보일수록, 그런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큰 감사로 다가오고, 그러면서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는지, 내가 더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찾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 혼자 믿음을 지키고 살아도 된다는 생각만큼 교만한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가장 싫어했던 것이 바로 내가 구원받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믿음에 교만의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조금 이견은 있지만, 저는 이것이 그가 성도로서 느끼는 자기의 부족함에 대한 긴장과 그의 믿음에 대한 겸손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바울이 이렇다면 우리야 오죽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신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자유롭게 다가가고, 따뜻한 관계를 즐기고, 결국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 충성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는 마음의 평안하게 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