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7 다섯 번째 ‘팔복’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2)
* 지난 시간 나눈 다섯 번째 복 긍휼히 여김에 대해: - 긍휼의 의미는‘남을 불쌍히 여겨서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긍휼은 훨씬 더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사랑이 흘러 넘쳐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성경은 긍휼이란 단어대신 여러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인자, 바지, 사랑, 불쌍히 여김, 민망히 여김 등등.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긍휼히 여기라는 말씀은‘동일시’ 여기라는 의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감정이입’이라는 말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장 완벽한 긍휼은 예수님의 ‘성육신’입니다.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33년간을 사셨고, 마침내 인간처럼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자기를 비우셨다’고 표현했습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5-16) -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우리가 원한다고 주시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입을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불쌍하고 안 돼 보였다는 것입니다,
- 긍휼이 여기라는 주님의 이 명령이 우리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 예수님께는 사랑이 흐르고 넘쳐서 주체하지 못하시지만 우리는 긍휼은커녕 부부간에도 악에 받쳐 싸우고 때로는 지칠 때까지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방하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서 헤어지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의 명령들과 약속들은 우리가 지키기에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안 되거나 감당되지 않는 것들을 말씀하셨을까요?
1. 이것을 붙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네 힘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힘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고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함. -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총독과 이스라엘 민족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 했지만 주변 이방 민족들의 방해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진척이 안돼 좌절할 때,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권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영으로만 될 것이다.'(슥 4:6)
2.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요?- 긍휼을 베푸는 대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내가도와야 할 긍휼의 대상이 있고, 용서해야 할 긍휼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든 성령께서 주셔야 가능합니다.
1) 에스겔 36:26에-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했습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에 오시면 제일 먼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도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은혜와 긍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2) 눅 23:34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주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들이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 하셨습니다. 몰라서 그런 행동을 했으니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3.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을 입을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
긍휼은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뜻이며, 내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 아래 산다는 뜻입니다. 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하셨습니다. - 긍휼히 여길 줄 모르면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약 2:13).” -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긍휼 없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은 그를 무자비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하지만 긍휼을 베푸는 자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의 심판마저 바꿀 수 있습니다(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했던 아브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