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이니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행 9:3).”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행 9:8-9).”
위 말씀의 배경은 바울 사도가 예수 믿기 전 대제사장이 발급해준 체포영장을 소유하고, 이스라엘 땅을 넘어 지금의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로 핍박을 피해 도망한 성도들을 체포하기 위해 도착한 후 주께서 빛으로 사울(바울)을 찾아 오셨을 때의 상황입니다.
바울은 그때의 상황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체포조의 우두머리로 그 수하의 부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빛은 오직 바울 한 사람에게만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력한 빛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만이 특별한 은혜를 받을 만한 특별한 자격을 소유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당시 하나님의 교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을 잡아 투옥시켰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앞장선 사람입니다. 성도들의 원수요, 주님의 원수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만 빛을 비춰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주신 이유를 아무리 생각하고, 기도해 봐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바울은 에베소서의 말씀에서 태초부터 자신을 구원하기로 계획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요, 자비라고 말을 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평탄 대로를 걷던 바울의 인생은 끝이 났습니다. 아직 젊은 사람이 갑자기 시력을 잃고, 남의 손에 이끄려 겨우 걸어가야 하는 그의 인생에 희망이 살아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네가 나를 만나기 전 네 눈으로 본 모든 것은, 다 가짜요, 의미 없는 것이기에 너는 더 이상 그것을 봐야 할 눈이 필요 없다.” “네가 나를 만나기 전 살기 위해 먹었던 음식과 물은 사실은 너를 살리는 음식이 아니며, 물이 아니기에 너는 더 이상 그 입으로 먹을 이유가 없다.” “네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너는 분명 지금보다 출세했을 것이고, 더 많은 부를 이루었을 것이고, 더 많은 명성을 쌓았을 것이다. 하지만 네 삶의 끝은 생명이 아니라 무덤이며, 그 무덤의 끝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주님을 만나기 전 본 것, 입는 것, 먹고 마시는 것의 끝에는 다만 아무 의미 없는 무덤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난 이후의 삶은 비록 세상 보기에 형편없다 할지라도 구원이요, 희망이요, 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