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빙에 대한 오해

목회자가 귀했던 과거에는 교회 안에 기본적으로 목회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의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진짜 청빙(請聘) (請/부탁할 청, 聘/부를 빙)이라는 어려운 한자 말의 의미가 비교적 정확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목사님이 오셔서 채워주시기를 원하는 자세로” 부탁해서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청빙”이라고 하지만, 방법을 보면 회사 직원 뽑듯 10가지에 가까운 증빙서류를 요구하고 심사합니다. 정말 목회에 중요한 인간관계, 성품, 삶의 분위기, 부부와 자녀와의 관계 같은 영성에 관해서는 전혀 관계없는 절차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청빙의 과정 때문에 교회가 어지러워지거나, 성도들이 나누어지고, 정작 교회가 성령 안에서 누려야 할 영적 풍성함을 아예 기대조차 안 하는 분위기만 만드는 일을 수없이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 서류로 심사해서 교인들의 영적 장래를 맡겨야 할 다음 목회자를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방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통해 목회자의 신뢰를 회복고자 애썼습니다. 그런 영성, 교회 분위기에서 출발 된 신뢰가 만들어지자 얼마든지 후임 목회자를 추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식구들은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1. 우리에게 맞는 목회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교인이 10명이면 10명의 목회자가 와야 하고 100명이면 100명의 목회자가 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 자기가 원하는 목회자의 그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맞는 목회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꿈 깨세요!
2. 설사 기적적으로 10명 또는 100명에게 꼭 맞는 목회자를 찾았다 할지라도 간절히 구하는 마음으로 와 달라고 “청빙”했더니, 이번에는 그분이 안 오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훌륭한 목사님이 우리 교회 오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래서 우리에게 맞는 목회자를 찾는 것이 청빙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목회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인 제가 여러 통로를 통해 점검된 목회자를 추천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목회자인 줄로 알고 믿음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4. 하지만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목회자를 청빙 했다고 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목회자에 대한 나름의 불평, 불편함, 부족함이 보일 것입니다. 그때 그 부족함이 보이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목회자의 그 부족함을 채우라는 부르심으로 알아 잘 섬기기로 결단하자고 격려했습니다. 부족한 목회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면 피차의 섬김을 통해 서로에게 상급이 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지혜라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교단법이나 우리가 이제까지 보고 배운 교회 경험으로는 제가 말씀드린 진짜 “청빙”의 그림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진짜 “청빙”의 뜻과 오늘의 현실이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아파하는 한 이민교회 목회자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 미주 가사원장 김인기 목사






